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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주인공 이정주, 앙상블, 작품평가, 총평

by 짧은 글의 단락 2025. 11. 20.

이판사판 포스터

SBS 수목 드라마 '이판사판'(Judge vs. Judge, 2017)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판사들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법정 드라마다. 검사나 변호사가 주역이었던 기존 법정물과 달리, 판사라는 직업인의 치열한 삶과 갈등, 그리고 정의를 향한 딜레마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특히 박은빈, 연우진, 동하 등 주연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미제 사건에 얽힌 거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서스펜스가 결합되어 방영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법정 공방을 넘어, 사법 시스템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의 성장을 그려낸다.

주인공 이정주: 캐릭터와 딜레마

드라마의 중심에는 이정주(박은빈 분) 판사가 있다. 그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판사로, 법정에서 파렴치한 피고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욱'하는 성격을 보여 '꼴통 판사', '분노 조절 장애 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의 욱하는 성격 뒤에는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이한 친오빠 최경호의 비극적인 과거가 숨겨져 있다.

이정주는 오빠의 무죄를 입증하고 진범을 잡기 위해 속물적인 욕망까지 동력 삼아 판사의 길을 선택한 인물이다. 그녀는 법복을 입고 시스템 안에서 진실을 찾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빠를 둘러싼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되며 개인적인 복수심과 판사로서의 정의 사이에서 심각한 딜레마를 겪는다. 박은빈 배우는 이정주의 복잡한 감정선, 즉 겉으로는 강하지만 내면은 상처로 가득 찬 모습을 탁월하게 소화해냈다.

앙상블: 사의현과 도한준

이정주 판사의 곁에는 두 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

사의현 (연우진 분):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 이정주와 같은 재판부에 배정되는 그는 이정주와는 정반대로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법과 윤리만을 기준으로 판결을 내리는 인물이다. 그는 이정주의 좌충우돌 행동에 휘말리면서도, 그녀의 진실을 향한 열정과 순수한 마음에 점차 공감하며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 연우진 배우는 사의현의 지적이고 차분한 매력을 안정적으로 표현하며 극의 균형을 잡았다.

도한준 (동하 분):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사법연수원 수석 출신의 엘리트 검사이자, 이정주와 사의현의 동기다. 차기 대권 주자인 국회의원 아버지와 유명 법대 교수 어머니를 둔 인물로, 겉으로는 능글맞지만 복잡한 가족사와 어두운 비밀을 품고 있다. 특히, 도한준을 연기한 동하 배우는 입체적인 캐릭터 소화력으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드라마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작품 평가

'이판사판'은 한국 법정 드라마의 클리셰를 깨고, 재판의 최전선에 있는 판사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검사나 변호사의 역할에 치중했던 기존 드라마와 달리, 법복을 입은 이정주 판사가 겪는 개인적인 고뇌와 사법 시스템 내부의 모순을 심도 깊게 조명하여 드라마의 시야를 확장했습니다. 특히 박은빈 배우는 분노 조절 장애 판사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고, 동하 배우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훌륭한 앙상블은 드라마의 무게감을 한층 더했습니다. 메인 서사인 주인공 오빠의 미제 사건을 중심으로 한 법정 미스터리는 거대 권력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촘촘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구조적인 아쉬움은 후반부로 갈수록 드러납니다. 흥미진진했던 법정 서스펜스에 비해 이정주와 사의현 사이의 로맨스 라인은 다소 뜬금없거나 주변부에 머물러, 극의 긴장감을 분산시킨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초반에 제시되었던 이정주 판사의 파격적인 캐릭터성이 중반 이후 오빠 사건 해결에 집중되면서 점차 희석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촘촘하게 전개되던 사건 서사 역시 최종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다소 급박하게 마무리되면서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장르적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판사판'은 새로운 시도와 명품 연기를 선사했으나, 후반부 서사 조율과 장르적 균형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총평

'이판사판'은 '판사'라는 미개척 분야를 조명하며 한국 법정 드라마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의의가 있는 작품입니다. 정의 구현을 향한 주인공들의 끈질긴 추적과 복잡한 인간관계가 돋보였지만, 아쉬운 마무리와 덜 매력적인 로맨스 라인이 전체 완성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에 대한 질문과 박은빈, 동하 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감상하고 싶다면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드라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