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개봉한 영화 『차이나타운』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 중심 범죄 누아르 장르로, 피가 아니라 ‘환경’과 ‘생존’이 가족을 결정짓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을 거칠고도 절제된 방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어떤 희망이나 구원을 쉽게 제시하지 않으며, 인간이 특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엄마라 불리는 인물과 일영의 관계는 모성의 부재를 넘어서 소유와 통제, 생존 방식의 대물림을 상징하며, 차이나타운이라는 공간은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역에서 버려진 이들이 서로를 이용하고 의지하며 버텨내는 잔혹한 생존 생태계를 의미한다. 『차이나타운』은 선과 악의 구분을 흐리고, 인물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작게나마 존재하는 감정의 흔들림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날카롭게 포착하며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생존의 방식
『차이나타운』에서 인물들의 행동은 도덕이나 감정이 아니라 생존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며, 그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가장 잔혹한 방식조차 감내한다. 일영은 버려진 이후 엄마에게 길러진 존재로, 감정이라는 것을 거의 표현하지 않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 뒤에는 “살아남는 법”만이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생존을 위해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법을 먼저 배웠고, 인간적인 감정의 여지는 그에게 사치나 위험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엄마 또한 생존을 위해 감정 없이 사람을 다루는 인물이며, 한 번 마음에 들인 ‘아이’조차 도구처럼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버릴 수 있는 존재로 본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상대를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것이고, 감정은 약점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영과 엄마 모두 누군가를 믿거나 의지하기보다 철저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을 유지한다. 이처럼 영화는 인물들이 왜 잔혹해지는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환경적 필연성을 통해 설명하며, 생존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 속에서 인물들의 행동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현실적이고도 잔혹하게 그려낸다.
어둠의 관계
이 영화에서 관계는 보호나 사랑이 아닌 통제와 소유, 필요와 이용의 논리 속에서 만들어진다. 일영과 엄마의 관계는 겉으로는 가족의 형태를 띠지만 실제로는 주종에 가까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관계는 혈연이 아닌 역할과 생존을 기반으로 유지된다. 엄마는 일영을 가족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시스템의 일부로 취급하며, 그에게 내리는 명령과 지시는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 통제와 유지의 방식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잔혹한 관계 속에서 일영은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하고, 엄마의 말과 시선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다. 이는 일영이 단순히 차갑고 비인간적인 인물이 아니라,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관계의 형태를 갈망하는 내면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준다. 반대로 엄마도 감정이 완전히 없는 인물은 아니며, 일영을 버리면서도 흔들리는 모습, 그 감정의 미세한 떨림은 어둠 속에서도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 못하는 인간적 본능을 암시한다. 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관계이며, 사랑이나 연대가 아닌 생존 기반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비극적 구조를 영화는 날카롭게 드러낸다.
상처의 대물림
『차이나타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은 상처가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일영은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는 근원적 상처를 지닌 채 자랐고, 그 상처는 엄마의 방식 속에서 더 깊어지며 감정적 빈틈을 채울 수 없게 만든다. 엄마 또한 과거에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는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지만, 그녀의 행동과 선택은 생존을 위해 감정을 제거해온 사람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처의 반복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나타운이라는 공간 자체가 만든 구조적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버림받은 아이가 다시 누군가를 버리게 되는 순환을 통해 상처가 다른 형태로 재생산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일영이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순간들—석현과의 관계, 자신이 버려졌다는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은 그가 상처를 끊어내고자 하는 무의식적 몸부림이지만, 자신이 만든 세계와 자신을 정의한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내며 더욱 비극적이다. 상처는 개인의 선택으로 쉽게 끊어지지 않으며, 환경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반복되고 전이되는 구조적 현실임을 영화는 냉정하게 제시한다.
선택의 불가능성
영화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선택의 자유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영은 자신의 의지나 꿈을 말할 수 없는 인물이며, 영화 내내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생존의 방식뿐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기회를 한 번도 가진 적이 없고, 선택하려고 해도 이미 만들어진 세계가 그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제한한다. 엄마 역시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잔혹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 선택은 자유라기보다 생존의 연속된 결과물이다. 영화는 선택이라는 것이 개인의 의지보다 환경에 의해 더 크게 결정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누군가의 잔혹함이나 냉정함을 ‘성격’이나 ‘악의’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결국 일영이 내리는 마지막 선택조차 자유로운 결단이라기보다 그가 살아온 세계의 한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며, 그 비극성은 선택의 부재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보여준다. 『차이나타운』은 선택은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라 환경이 허락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제시하며, 인간의 삶이 얼마나 구조적이고 제한적인지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남는다.